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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할 거야.”라는 말이 100년 전까지만 해도 미친 소리로 들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은 너무나 자명해 보이지만, 100년 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돌 맞을 짓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궁금하시죠?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개화기의 혁명적인 사상이자, 문학 작품의 단골 주제였던 ‘자유연애 사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정해준 가문의 사람과 하는 사회적 관계였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아버지들끼리 바둑 두다가 결정 납니다. “얘야, 너 김진사 댁 알지? 거기 둘째 아들이 이제 네 남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운이 좋은 겁니다. 누군지는 알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은 배우자의 얼굴도 모른 채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요? 있을 리가 없죠. 정붙이고 살아야 했던 시절입니다. 정확하게 ‘사랑’이라는 개념은 근대에 와서 생긴 개념입니다. 엥? 무슨 소리냐구요? 지금 우리가 쓰는 ‘사랑’ 즉, 자유롭게 마음에 드는 이성을 선택하고, 서로 마음이 맞으면 교제하는 것, 그리고 독점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은 ‘자유’와 ‘소유권’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 나오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라다크 마을’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물론 ‘좋아하다’, ‘아끼다’와 같은 단어들은 있지만 지금 우리가 쓰는 의미의 사랑, 즉 ‘정열적이고 독점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는 없는 거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00년대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그런 ‘사랑’의 개념이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도 물론 ‘사랑’이라는 단어가 있긴 있었지만 지금의 의미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아끼다’ 정도의 의미라고 할까요? 아무튼 서구에서 ‘자유연애 사상’이 들어오면서 지금의 ‘사랑’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랑은 원래 자유롭게 하는 것이잖아요? 누가 시켜서 강제로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자유’라는 단어가 왜 붙어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일까요? 네, 이것은 기존의 가부장적인 유교 질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결혼은 사회, 경제적인 이유로 이루어진 가문끼리의 결합이었고, 철저하게 부모에게 모든 결정권이 있었습니다. 그런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개인이 사랑할 대상을 선택하고, 그와 결혼하겠다는 것이 바로 ‘자유연애 사상’입니다. 이는 당시엔 혁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근대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처럼 퍼져나갔고, 자유연애를 한다는 것은 곧 근대인, 즉, 모던보이, 신여성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런 시대상을 반영해 문학에서도 ‘자유연애’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이광수의 ‘무정’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일으킵니다.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벗어나려 하는 불온한 행동이니까요. 이를 한자로는 ‘불륜’이라고 합니다. ‘아니 불’에 ‘무리 륜’ 자로 되어있는 이 ‘불륜’은 기존의 무리, 즉 기존의 가족 질서를 부정하고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정해 놓은 사람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니 불륜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부모와의 갈등은 불가피했습니다. 부모들은 그렇게 쉽게 자유연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은 온전히 부모의 권한이었고, 사회, 경제적으로 본인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결혼을 일찍 했기 때문에 대부분 이미 남편이나 아내가 있었습니다. 뒤늦게 신교육을 받아 ‘자유연애’의 관념을 갖게 된 사람은 부모와 함께 아내나 남편도 부정하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불륜’은 지금의 ‘바람’과는 좀 다릅니다. 정확하게 ‘바람’은 ‘불륜’이 아닙니다. 기존의 가족을 유지한 채 몰래 다른 사람과의 유희를 즐기는 것이니까요. 잠깐의 ‘일탈’ 정도라고나 할까요? ‘바람’이 ‘불륜’이 되려면 기존의 가족을 해체하고 새로운 사랑과 가족을 이뤄야겠죠. 그런데 대부분의 바람피우는 사람들은 비겁해서 그 정도의 배포와 용기는 또 없습니다. 그러니 ‘불륜’이라고 보기 어렵죠.
아무튼 ‘불륜’은 불온한 것이고 혁명적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랑은 ‘불륜’이었고, 1920년대 경성의 모든 사랑은 ‘불륜’이었습니다. 기존의 가부장적 유교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롭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려고 했으니까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잘 견디지 못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하죠. 그래서 ‘자유연애’를 실천했던 사람들은 항상 세상의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부모를 저버리고 남편과 조강지처를 버렸다고 말이죠. 물론 홀로 남겨진 부인과 남편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불쌍하니까요. 그렇지만 분노의 대상을 헷갈려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가부장적 유교 질서이지 그들을 떠난 남편과 부인이 아닙니다.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때, 억지로 끌려가듯이 결혼했습니다. 애초에 사랑 없는 결혼이었죠.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가정을 떠난다고 합니다. 이때 과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남겨진 사람이 불쌍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사랑의 배신’ 즉, 사랑하는 연인에게 버려졌기 때문은 아닙니다. 애초에 사랑이 없었으니 배신도 있을 수 없죠. 즉, 남겨진 사람은 사랑에 배신당한 것이 아니라, 순종적으로 기존의 질서를 잘 따라왔는데 그것을 거부한 상대방으로 인해 생활이 불안해지고 생계가 위험해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이고 희생자인 것이지, 사랑하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람피워서 버려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한쪽이 바람을 피워 배우자를 떠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사랑의 배신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서로 원해서 결혼했던 게 아니잖아요? 거대한 가부장적 질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끌려온 것이었잖아요. 그러니 배신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세상의 비난이 두려워 사랑하게 된 연인을 포기하고, 기존의 가족 질서를 유지한 채 사랑 없이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책임지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지키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당대 자유연애를 실천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남겨진 부인과 남편들 모두 시대의 피해자이고 희생자라고 해야 맞겠습니다. 한쪽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온갖 비난과 야유를 받아야만 했고, 다른 한쪽은 하필 가부장적 유교 질서가 무너지는 과도기에 태어나고 결혼해 자신의 안정된 생활이 무너져 내렸으니까요.
‘자유연애’는 불륜적이었기에 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혁명에는 항상 피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당대 연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해 세상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죠. 그들의 사랑은 점점 질식해갔고 그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자신들의 사랑이 파괴되고 식어가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이요. 물론 그들의 사랑을 영원하게 만드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둘이 함께 자살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사랑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둘이 함께 자살한다면, 그 사랑은 죽지 않고 영원 속에 간직될 테니까요. 그러면 자신들의 사랑이 점점 죽어가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에 무릎 꿇고, 결국 사랑을 포기하게 되는 내 모습도 보지 않아도 되구요.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절정일 때, 가장 아름다울 때의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1920-30년대 많은 연인들이 동반 자살을 했습니다. 1920년부터 40년까지 동아일보 기사 중 ‘정사’로 분류되는 기사만 8,000건이 넘었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이 ‘자유연애 사상’은 강력했습니다. 기생이었던 ‘강명화’와 대구 갑부의 아들 ‘장병천’의 ‘정사’를 기점으로 ‘정사’가 유행처럼 젊은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집안을 살리기 위해 기생으로 팔려 간 ‘강명화’는 평양 대정권번의 명기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김동인, 나도향, 현진건 같은 유명 문인들도 그녀를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요, 특히 김소월의 스승 김억은 매일같이 그녀를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장병천이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 경성 친구들과의 송별연 자리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나게 됩니다. 장병천은 첫눈에 반해 다음날 일본행을 포기하고 강명화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그대가 보고 싶어서 다시 돌아왔소.” 그렇게 도쿄의 친구에게 부탁해 휴학계를 내고 매달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강명화와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에게 들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그러면서도 몰래 만나 사랑을 키워 갔지만 세간에서는 강명화가 재산을 노리고 장병천에게 달라붙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둘은 결국 일본으로 함께 유학을 떠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도쿄에도 이미 소문은 쫙 퍼져있었고 유학생들 사이에서 ‘유학생의 치욕’인 그들을 내쫓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장병천은 아버지를 잘 둔덕에 편하게 기생첩 하나를 데리고 놀러 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번은 집단으로 몰려와 장병천과 강명화를 모욕하고 폭행했습니다. 이때 강명화는 자신들도 고생하면서 학문을 닦고 있고, 우리들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며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칼로 내리쳐 잘라버렸습니다. 사방으로 피가 튀자 학생들은 혼비백산으로 도망쳤고 남아있던 장병천만이 손가락을 부여잡고 오열을 토했습니다. 둘은 결국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손가락 사건 때문에 오히려 더 시선이 좋지 못했습니다. ‘기생에 미친 부랑아’라고 비난을 받는 장병천을 보면서 강명화는 결국 자살을 결심합니다. 온양 온천으로 마지막 여행을 가서, 강명화는 밤에 쥐약을 먹고 장병천의 품에 안겨 죽게 되는데요, 이때 죽으면서 “나는 벌써 독약을 마셨으니 마지막으로 꼭 안아 주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없습니다. 그렇게 장병천은 세상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장례를 치른 몇 달 뒤 쥐약을 먹고 똑같이 자살합니다.
사랑은 나의 비어있는 퍼즐 조각에 그 사람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내 퍼즐들을 다 걷어내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전부 재배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존의 퍼즐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그 자리에 있겠다고 난리를 치겠죠. 그러나 그것을 눌러 이기지 못하면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아니, 우리는 사랑하는 만큼 그것들과 싸울 겁니다.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싸우지도,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내 삶의 질서는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을 내 삶에 끼워 맞추려고 하겠죠.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사랑’이 아닙니다. 적당한 사람을 골라 예쁘게 ‘연애’하는 내 모습, ‘안정’된 내 모습을 사랑하는 ‘자기애’일 뿐이죠. 그래서 모든 사랑은 불륜적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내 삶이 그다지 바뀌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내 삶의 질서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한 번 스스로 의심해봐야 합니다. 여러 가지 조건들을 고려해 적당히 타협보고 말 그대로 ‘적당한’ 사람을 고른 것은 아닌가 하구요. 만약 그렇다면 1920년대 우리 조상들이 피 흘리며 일궈온 ‘자유연애’의 가치를 부정하고, 다시 가부장적 유교 질서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결혼 중매 회사들이 하듯이 미리 사회, 경제적 능력을 따져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다면, 비슷한 가문에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살다 보면 세상에 정말 타협 볼 일이 많습니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겠죠. 여러 현실적 조건들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내 사랑에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들이 끼어들어 간다면, 그만큼 나는 사랑을 못 하게 되는 것이고, 그만큼 내 사랑은 흐릿해져 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적 조건이 중요하다면, 정말 안타깝게도 딱 그 정도로만 사랑하고 살게 되는 겁니다. 자유연애 사상이 들어와 많은 청춘 남녀들이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지도 벌써 100년이 지났네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정말 자유연애를 하고 계신가요?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일의 국어 이야기는 자유연애 사상 두 번째 이야기, 김우진과 윤심덕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국어 이야기
어쨌든 국어 이야기
이것도 국어 이야기
안녕하세요. '어쨌든 국어'입니다.
'국어가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는 없을까?'
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 목차
1.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2. ‘자유연애 사상’이란?
3. 사랑의 불륜성
4. ‘불륜’과 ‘바람’의 차이
5. 시대의 희생자들
6. 수많은 연인들이 동반 자살을 했던 이유.
7. ‘강명화’와 ‘장병천’의 사랑 이야기
8. 자유연애 사상은 여전히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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