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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의 ‘풀’이라는 신데요, 정상적(?)으로 중고등학교를 나오셨다면 혹은 다니고 있으시다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시죠? 물론 오늘 이 시를 다룰 건 아니구요, 시보다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김수영을 한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어떤 단어가 좋을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김수영을 수식하는 말로 ‘4.19의 시인’, ‘저항 시인’, ‘민중 시인’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요, 이것들을 모두 관통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조금 어렵죠? 저는 ‘자유’라는 단어가 김수영을 가장 잘 포착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누구보다 ‘자유’에 대해 민감했고,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시 쓰는 행위 자체를 ‘자유’라고 생각했던 시인이었으니까요. 실제로 김수영과 ‘순수참여 논쟁’을 벌였던 이어령도 ‘김수영에게 있어서 시는 자유요 그 자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김수영과 ‘자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김수영이 자유에 민감해하고 목이 터져라 자유를 외쳤던 이유가 뭘까요? 오늘은 김수영이 겪은 참혹했던 6.25의 경험을 통해 그가 왜 ‘자유의 시인’이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6.25가 터졌지만, 부인 김현경의 배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 때문에 김수영은 도망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당시 반동으로 몰려 이광수, 정지용, 김억 등의 많은 문인들이 정치보위부로 끌려갔는데요, 김수영도 반동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좌익세력의 문학가 동맹에 가입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맹원들도 모두 종군을 나가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결국 김수영도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북으로 끌려가게 되었는데요, 두고 온 가족들에게 보복을 할까 봐 도망칠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평안남도 개천에 도착해 자신보다 훨씬 어린 소년병들에게 ‘이런 간나 새끼들, 미제 앞잡이 새끼들’과 같은 욕과 발길질을 받으며 혹독한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평안남도 순천에 있던 김수영은 UN군의 공격으로 전열이 무너진 틈을 타 탈영을 감행합니다. 민가로 내려가 헌 바지와 저고리를 얻어 입고 군복과 총을 산기슭에 묻은 후에 전력을 다해 남쪽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러다 북한군에게 발각되어 총살 직전까지 가지만 자신은 UN군을 피해 도망가는 인민군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김수영은 이때를 ‘이 악귀의 눈동자보다도 더 어둡고 무서운 밤(시)’으로 회상합니다. 자신의 말을 증명해보라는 북한군의 말에 따라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손톱이 다 부서지도록 땅을 파내 군복과 총을 겨우 찾아냈고, 이를 가지고 개처럼 생명을 구걸해야 했습니다.
겨우 살아난 김수영은 어찌어찌 또 탈출극을 벌여 서울 충무로까지 내려왔는데요, 집 코앞에서 경찰에게 잡혀 파출소로 끌려가고 맙니다. 아무리 자신은 강제 징용을 당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간 것이라고 항변해도 경찰들은 ‘빨갱이 새끼’라며 쇠의자로 마구 두들겨 팼습니다. 머리가 터져 피가 솟아오르고 피투성이가 되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가 되고 나서야 겨우 김수영은 유치장으로 던져졌습니다.
김수영은 곧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옮겨지게 되는데요, 이곳에서는 친공과 반공 포로들이 밤마다 서로의 막사 철조망을 부수고 습격했으며, 하루에 15명의 포로들이 인민재판의 형식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김수영은 이곳에서 매일아침 토막 난 시체가 변기에 버려져 있는 걸 봐야만 했고, 그 앞에서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어제까지 같이 이야기하던 포로가 토막이 되어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을 보면서 김수영은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상주사심)
이처럼 김수영에게 6.25라는 경험은 인간의 자유가 어디까지 억압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탈영 중 발각돼 인민군에게 짐승처럼 목숨을 구걸해야만 했던 경험, 자칫하면 자신도 앞에 널브러져있는 시체토막이 될 수 있다는 공포스런 포로수용소에서의 경험. 목을 졸려본 사람만이 공기의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이 두 경험을 통해 김수영은 자유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철저하게 자유를 부정당했던 경험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수영을 ‘자유의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누구보다 자유에 대해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죠.
가스 중독으로 죽을 뻔했던 사람은 아주 조금만 가스가 새어 나와도 이를 금세 알아차리는 법입니다. 김수영은 6.25에서의 경험 덕분에 마치 예전에 가스에 중독된 사람처럼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억압적 분위기를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를 썼던 것이죠. 김수영에게 당시 사람들은 가스가 새고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한 채 잠들어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김수영은 스스로 비상경보기가 되어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승만 독재가 끝나고 이제는 좀 자유로워졌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자유는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진정한 자유는 실현된 적이 없다는 것을 시로써 외쳤던 게 김수영이라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제 왜 김수영이 자유의 시인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의 영상은 최하림 시인의 ‘김수영 평전’,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를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국어 이야기
어쨌든 국어 이야기
이것도 국어 이야기
안녕하세요. '어쨌든 국어'입니다.
'국어가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는 없을까?'
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 목차
1. 김수영은 왜 자유의 시인이 되었나?
2. 인민군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경험
3.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의 경험(시체 토막)
4. 온몸으로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은 김수영
#김수영 #시인 #문학 #전쟁 #거제도포로수용소 #김수영평전 #김수영을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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