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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Td3SZ3LdSI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 이상, <날개>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특이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백이면 백 ‘이상’을 꼽을 겁니다. 천재로 평가받고는 있지만 알면 알수록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사람입니다. 본명은 ‘김해경’인데 행동과 성격이 워낙 이상해서 사람들이 ‘이상’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을 정도인데요, 친구에게 자신의 애인과 잠자리를 가지라고 권하질 않나, 애인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묘한 희열을 느끼질 않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이상’과 그의 첫 여자 ‘금홍’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 ‘봉별기’를 중심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만 같은 ‘이상’을 아주 쪼끔이지만 이해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폐결핵을 앓던 이상은 1933년 요양차 황해도의 배천 온천을 갑니다. 거기 있는 ‘능라정’이라는 요정에서 기생 ‘금홍이’를 만나는데요. 자신을 마흔 살쯤으로 보는 ‘금홍이’에게 살짝 빈정이 상했지만 ‘이상’은 작지만 깡그라진 ‘금홍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체대가 비록 풋고추만하나 깡그라진 계집이 제법 맛이 맵다.
                                                        - 이상, <봉별기>

 

친구 ‘구본웅’과 함께 또 한 번 ‘금홍이’를 만나러 가는데 괜히 “어때 괜찮지? 자네 한번 얼러보게”하며 잠자리를 권합니다. ‘구본웅’이 거절하자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했지만 ‘구본웅’은 화장실 가는 척하며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결국 그날 ‘이상’이 부전승으로 ‘금홍이’를 차지하는데요, 그날부터 둘은 깊은 관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상’은 ‘금홍이’에게 화대를 주지 않았는데요, 왜냐는 친구의 질문에 “날마다 밤마다 금홍이가 내 방에 있거나 내가 금홍이 방에 있거나 했기 때문이지”라고 말합니다. 즉 자신들은 매춘부와 고객의 관계를 넘어선 연인 관계였기 때문에 돈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러면서도 계속 다른 남자들과의 매춘을 허락했다는 겁니다. 더 이상한 것은 아예 자기가 더 적극적으로 남자를 물색해 ‘금홍이’에게 권했다는 것입니다. ‘금홍이’는 여기서 한술 더 뜨는데요, ‘이상’이 소개해준 남자들에게서 받은 돈을 꺼내놓고 ‘이상’에게 자랑을 합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이상’은 또 재밌어합니다. 흠..... 이해가 되시나요? ‘이상’에게 사랑은 마치 하나의 가벼운 놀이처럼 보입니다. 정말 ‘금홍이’를 사랑하긴 한 걸까요? 아무튼 ‘금홍이’와의 그런 이상야릇한 유희를 즐기는 동안 얼마나 재미가 있었던지 각혈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백부가 뇌출혈로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서둘러 경성으로 돌아온 ‘이상’은 1933년 6월 백부의 유산으로 종로 2가 청진동에 다방 ‘제비’를 차리고 ‘금홍이’를 부릅니다. ‘이상’은 ‘금홍이’의 과거를 묻지 않기로 하고, 함께 동거하면서 아기자기하게 연애를 시작합니다. 

 

서로 지나간 일은 묻지 않기로 하였다. 
과거래야 내 과거가 무엇 있을 까닭이 없고 말하자면 
내가 금홍이 과거를 묻지 않기로 한 약속이나 다름없다.
                                                  - 이상, <봉별기>

 

동거 초기에는 정말 여느 신혼부부처럼 함께 산책도 다니고 사이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비’ 다방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둘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커피는 맛없기로 소문이 났고, 안 그래도 어둡고 칙칙한데, 구본웅이 그려준 우울한 초상화까지 다방 정면에 걸어두어 손님들이 발길을 끊게 했습니다. 게다가 1934년 ‘오감도 사건’까지 겹치면서 제비 다방의 손님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오감도 사건’은 1934년 ‘이상’이 조선중앙일보에 시 ‘오감도’를 발표하자 “그것도 시냐?”라며 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조선중앙일보가 폐간될 위기까지 처한 사건을 말하는데요, 그러든 말든 우리의 ‘이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방 운영에 전혀 관심이 없았던 ‘이상’은 일명 ‘도스토옙스키의 방’에서 틀어박혀 몇 날 며칠이고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골방에서 그는 술을 마시거나 멍하니 앉아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모습에 ‘금홍이’는 진절머리를 쳤습니다. 그때부터 ‘금홍이’는 바깥으로 샛서방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지겨운 다방 마담 노릇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었던 거겠죠. 재밌는 것은 ‘이상’도 그런 ‘금홍이’의 외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런 ‘금홍이’를 위해 일부러 친구 ‘박태원’의 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했다는 겁니다. ‘금홍이’도 이에 지지 않고 이상과 동거하는 방에까지 남자를 끌어들였는데요, 어느 날은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거의 방기하는 ‘이상’의 모습에 격앙되어 사나운 말과 손찌검을 합니다. ‘이상’은 몹시 얻어맞고 울면서 집을 나가 사흘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루 나는 제목 없이 금홍이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나가서 사흘을 들어오지 못했다.
너무도 금홍이가 무서웠다.
                                           - 이상, <봉별기>

 

이 정도면 마조히스트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상’은 그렇게 얻어맞고도 또다시 돌아와 ‘금홍이’를 끌어안습니다.

 

  여느 때처럼 ‘금홍’은 또 집을 나가는데요,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어떤 외간 남자와 버스를 타고 관악산 쪽으로 갔다는 소문만 남긴 채 그 이후로 ‘금홍’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상’은 ‘금홍’이 자신을 완전히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는 피상적이고 육체적인 관계일 뿐이고 자신과는 그것을 뛰어넘는 진실한 관계임을 확신했기 때문일까요? 매번 자신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금홍이’를 보면서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금홍’이 떠나고 다방의 월세도 못 내게 되자 소송까지 걸리는데요, 재판 당일날 늦잠을 자 불리한 판결을 받고 결국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쫓겨나게 됩니다. 또 며칠을 잠만 자다가 친구 정인택을 찾아가 30전을 빌려 ‘금홍이’에게 전보를 칩니다. “올래? 안 올래? 끝. 이상.” 두 달 뒤 ‘금홍’이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이상’은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습니다. ‘이상’은 ‘금홍’의 모습에 슬퍼져서는 야단을 치기는커녕 맥주와 붕어과자를 사 먹이며 위로해줍니다. ‘금홍’은 “네가 잘했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며 이상을 원망했는데, 예전 같았으면 그런 어리광을 받아주었을 테지만, 이미 정리가 끝난 이상은 ‘금홍이’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그렇게 이별했지만 병이 악화되자 ‘금홍’이 보고 싶어진 ‘이상’은 ‘금홍’에게 “중병에 걸려 누었으니 얼른 오라.”고 엽서를 띄웁니다. ‘금홍’은 한걸음에 달려와 ‘이상’을 간호하고 먹여 살리는데요, 그렇게 다섯 달이 지나자 지쳤는지 결국 떠나버립니다. 그 무렵 친구 ‘구본웅’의 소개로 ‘변동림’과 결혼해 황금정에 신혼 방을 차리는데요, 얼마 뒤 ‘금홍’이 다시 경성에 나타납니다. ‘이상’은 그 소식을 듣고 ‘금홍’의 동생 집으로 찾아가 ‘금홍’을 만납니다. 왜 왔냐는 ‘이상’의 질문에 “네눔 하나 보구 싶어 서울 왔지 내 서울 뭘 허려 왔다디?”라고 답하며 정말 마지막 술자리를 가집니다. 이상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금홍’은 그 자리에서 은수저로 소반을 치면서 구슬픈 창가를 하나 부릅니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버려라."
                                                                                  - 이상, <봉별기>

 

이것이 ‘이상’과 ‘금홍’의 쓸쓸한 마지막 작별의식이었습니다.

 

  ‘금홍’은 누가 뭐래도 ‘이상’의 뮤즈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금홍’을 ‘이상’을 유혹하고 길들여 엄청난 폭력과 횡포를 저지른 ‘요부’라고 말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가스라이팅’했다는 거죠. 그러나 그것은 남성들의 두려움이 만든 허상일 뿐 실제 ‘금홍’의 모습을 담지는 못합니다. ‘금홍’은 요부라기보다는 사악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그저 무능한 동거자의 모습에 내면의 폭력성이 튀어나왔던 것일 뿐이죠. 어쩌면 천재 시인 ‘이상’의 신화를 좀 더 극적이고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금홍’을 요부처럼 만든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러니 ‘금홍’의 사악함과 애욕은 실제와는 달리 많이 과장되고 날조되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금홍’과 관련한 ‘이상’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심리는 어떻게 봐야할까요? 어떻게 애인에게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를 그것도 적극적으로 권할 수가 있을까요? ‘이상’은 ‘금홍’을 진심으로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매사에 시니컬했던 ‘이상’에게 낭만적 사랑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상’에게 사랑은 ‘가면 놀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그런 놀이 말입니다. 고통스럽지만 그것마저도 즐기는 지독한 유희였던 것이죠. 그는 상대방에게 속거나 배반당하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완성되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누군가에게 완전히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죠. 이상은 누군가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미젖을 갓 떼고 난 후 아들이 없어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큰집으로 입양된 ‘이상’은 자연스레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고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입양아 트라우마’는 ‘이상’을 자폐적으로, 자기방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여자를 믿지 못했고 매번 사랑을 장난처럼, 놀이처럼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결국 자신이 버림받도록 행동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그의 쿨함과 나태는 어쩌면 결국 스스로를 버림받게 만들어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을 충족하고 확인하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요? ‘그래, 여자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결국 나를 버려. 어머니가 나를 버렸던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면 참 ‘이상’이라는 사람이 쓸쓸하고 불쌍해 보입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외톨이라...... 아무튼 ‘이상’은 그런 외로운 사랑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의 영상은 ‘홍지화’의 ‘한국 문단의 스캔들’을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내일의 국어 이야기는 ‘이상’의 두 번째 사랑 이야기, 즉 ‘권순옥’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어쨌든 국어'입니다.

'국어가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는 없을까?'

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 목차

1.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이상’ 시인

2. 기생 ‘금홍이’와의 첫 만남(배천 온천, 능라정)

3. ‘금홍이’와의 이상야릇한 유희

4. ‘제비’ 다방 개업 및 ‘금홍이’와의 동거

5. ‘오감도 사건’과 사랑의 위기

6. ‘금홍’이의 가출

7. ‘금홍’이와의 이별

8. ‘금홍’을 ‘요부’라고 보는 관점과 그 문제점

9. ‘이상’의 이상한 행동과 심리 분석(입양아 트라우마)

 

* 추천 : https://youtu.be/7tD_O9-bPaQ ‘봉별기’의 한 대목을 가지고 만든 ‘가을방학’의 노래 ‘속아도 꿈결’도 한 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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