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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U3CYDBtvQs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는 그림의 화가가 누군지 혹시 아시나요? 바로 ‘한국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김환기’ 화백입니다.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우주’라는 작품이 132억에 낙찰되면서 한국 미술 최고가를 경신했는데요. 물론 그 전에 최고가도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긴 합니다. 더 놀라운 건 한국 근현대미술 경매 낙찰가 TOP10 중 9위인 ‘이중섭’의 ‘소’를 제외하면 나머지 9개가 모두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라는 겁니다. ‘김환기’ 화백이 이렇게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었던 아내 ‘김향안’ 여사 덕분입니다. 이에 대해 ‘김환기’ 화백의 평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작가 이충렬은 '김환기에 대한 김향안의 사랑과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내조가 김환기의 예술을 꽃피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김향안’ 여사가 원래 시인 ‘이상’의 아내였다는 사실을요.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시인 ‘이상’의 세 번째 사랑 이야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김향안’ 여사의 본명은 ‘변동림’인데요, 그녀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영문과에 다니던 당시 최고 레벨의 신여성이었습니다. 문학, 특히 소설을 좋아하여 ‘삼국지’와 ‘구운몽’을 수십 번 탐독해 달달 외울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아마 이러한 공통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상’과 ‘변동림’은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36년, ‘이상’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 친구 ‘구본웅’의 소개로 ‘변동림’을 처음 만납니다. ‘권순옥’에 대한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한 후였죠. ‘변동림’과 ‘구본웅’의 관계는 좀 복잡한데요, ‘구본웅’의 아버지가 ‘변동숙’과 재혼했는데, 그녀의 이복 여동생이 ‘변동림’이었습니다. 즉 ‘변동림’은 ‘구본웅’의 의붓 이모가 되는 셈인데요, 재밌는 건 조카가 이모보다 여섯 살이나 많았다는 거죠. 아무튼 ‘이상’은 ‘변동림이’ ‘권순옥’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이상’은 그렇게 또 한 번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상’은 소설가 조영만의 표현에 따르면 ‘외국인처럼 희고 창백한 얼굴, 덥수룩하고 까만 수염, 보헤미안 넥타이, 한겨울에도 백단화를 신고 다니던 모던보이’였습니다. 이것만 보면 굉장히 멀끔했을 것 같은데 사실 ‘이상’은 귀차니즘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빗질은 물론이고 몇 날 며칠이고 머리를 감지 않아 늘 머리가 수세미 같았다고 합니다. 재밌는 건 그런 ‘이상’이 ‘변동림’ 앞에서는 예쁘게 단장한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각설탕만 만지작거렸다는 겁니다. 신여성을 벌레 보듯 하던 ‘이상’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소심하고 찌질한 모습이죠. 이것은 그만큼 당시 ‘변동림’이 무척 매력적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변동림’의 눈에도 ‘이상’이 범상치 않은 천재로 보였나 봅니다. “후리한 키에 곱슬머리가 나부끼고 수염은 언제나 파랗게 깎았다. 우뚝 솟은 코와 세 꺼플진 크고 검은 눈이 이글거리듯 타오르고 유난히 광채를 발산했다.”며 ‘이상’의 첫인상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변동림’은 ‘이상’의 과거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그녀는 신여성답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갑니다.

 

  ‘변동림’의 집안에서는 당연히 ‘이상’과의 만남을 반대했습니다. 어디 남자가 없어서 오입쟁이에 폐병쟁이냐고 난리가 났죠. 특히 ‘구본웅’의 계모이자 이복 언니였던 ‘변동숙’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럼에도 둘은 굴하지 않고 자유연애를 몸소 실천합니다. ‘이상’은 ‘구본웅’이 알아봐 준 ‘창문사’ 편집일도 그만두고, ‘황금정’(지금의 을지로)의 뒷골목으로 이사해 ‘변동림’과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은 정말 ‘이상’하게 또 ‘이상’답게 청혼을 합니다, 

 

“동림 우리 같이 죽을까? 아니면 그냥 우리 먼 데 가서 같이 살까?” 

 

이에 ‘변동림’은 

 

“저는 당당한 시민이 못 되는 선생님을 그냥 따르기로 했습니다.”

 

라며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둘은 1936년 6월 신흥사에서 구인회 회원들을 모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을지로 수하동 근처의 낡은 일본식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꾸립니다. 그러나 신혼을 즐기기에 ‘이상’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이상’은 햇볕 한 점 안 들어오는 셋방에서 하루 종일 누워서 지냈고, 생계는 ‘변동림’이 일본인이 운영하는 바(bar)에 나가 일을 하며 책임졌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구본웅’은 일본에 가서 얼마간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며 경비를 쥐여줍니다. 그해 10월 ‘이상’은 평소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동경으로 떠나기로 합니다. 그 길이 생애 마지막 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겠죠. 애초에 ‘이상’이라는 남자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은 불가능했던 것일까요? 결혼 3개월 만에 아내를 두고 동경으로 훌쩍 떠나버립니다. 그러나 동경의 모습이 ‘이상’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나 봅니다. 그해 늦가을과 겨울을 동경에서 보내지만, 시간이 갈수록 실망만 더해갑니다. 

 

“어쨌든 이 도시는 몹시 가솔린 내가 나는구나! 가 동경의 첫인상이다. 우리 같은 폐가 칠칠치 못한 인간은 우선 이 도시에 살 자격이 없다. …… 무슨 음식이고 간에 얼마간의 가솔린 맛을 면할 수 없다. 그러면 동경 시민의 채취는 자동차와 비슷해 가리로다.                                                                                                                                                                                                                                             - <동경>(1939)

 

‘이상’은 동경을 ‘속 빈 강정’이라고 비아냥거렸고 다시 경성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날로 악화되는 결핵 때문에 선뜻 돌아오지 못합니다. 건강이 위험신호를 지나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되자, ‘변동림’은 어서 귀국하라고 몇 번이나 권합니다. ‘이상’도 3월에는 귀국하겠다고 편지를 보내지만, 산책 중 갑자기 불심검문을 받고 행색이 수상하다는 명목으로 체포되어 한 달간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한 달간의 모진 핍박과 굶주림 속에서 그는 만신창이가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벽에 무언가를 끄적거렸다고 합니다. 그때 근무하던 일본인 경찰마저도 그의 글을 읽고 팬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진짜 천재긴 천재였나 봅니다. 한 달여가 지나고 ‘이상’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일본 경찰은 ‘병보석’으로 그를 석방시킵니다. 의식조차 혼미한 ‘이상’을 하숙집 대문 앞에 팽개치고 돌아갔다고 하는데, 동경에 있던 그의 친구들이 그를 발견해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 입원시켰지만,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양쪽 폐가 형체도 없이 녹아내린 후였으니까요. 뒤늦게 소식을 들은 ‘변동림’은 여인 혼자의 몸으로 기차와 배를 갈아타며 꼬박 이틀을 걸려 동경으로 달려갑니다. 가까스로 도착한 ‘변동림’은 ‘이상’에게 “무엇이 가장 먹고 싶어?”라고 물었는데, 역시 모던보이 ‘이상’답게 “센비키야 멜론, 멜론이 먹고 싶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서둘러 나가서 멜론을 사 온 후 깎아 ‘이상’에게 건넸지만 ‘이상’은 그 작은 멜론 조각도 넘길 수 없었습니다. 1937년 4월 17일, 만 26세의 나이로 그는 그렇게 평온한 얼굴로 그녀의 곁에서 마지막을 보냅니다. 그의 육신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는데, 비석에는 ‘묘주 : 변동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변동림’의 말에 따르면 그의 하숙방에서 원고 뭉치들과 그림들이 가득 나왔다고 하는데요, 안타까운 것은 그것들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상’이 죽고 화가 ‘김진섭’이 그의 데스마스크를 떴는데 이것도 분실되었다고 합니다. 평소 ‘이상’을 좋아했던 ‘김연수’ 작가가 이를 소재로 ‘꾿빠이, 이상’이라는 소설을 썼는데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것도 한 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이상’과 ‘변동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변동림’은 이후 ‘김환기’ 화백과 결혼하게 되는데요, 이때도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이복 언니였던 ‘변동숙’이 머리채까지 휘어잡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러나 불굴의 ‘변동림’은 변씨 가문과 영영 인연을 끊고, 이름마저 ‘김향안’으로 개명한 후 ‘김환기’와 결혼합니다. ‘이상’과 ‘김환기’ 두 남자와 사랑을 한 그녀는 정말 천재를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을 가졌던 여자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의 영상은 ‘홍지화’의 ‘한국 문단의 스캔들’을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어쨌든 국어'입니다.

'국어가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는 없을까?'

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 목차

1.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화가, ‘김환기’

2. ‘김환기’의 뮤즈, ‘김향안’

3. ‘변동림’과 ‘이상’의 첫만남

4. ‘변동림’ 집안에서의 반대

5. ‘이상’과 ‘변동림’의 결혼

6. 동경으로 떠나버리는 ‘이상’

7. 동경에 대한 실망

8. 동경에서의 불심검문과 감옥살이

9. ‘이상’의 죽음과 미스터리(원고 뭉치들, 그림들, 데스마스크)

10. 이름을 ‘김향안’으로 개명하고 ‘김환기’와 결혼하는 ‘변동림’

11. 천재를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을 가진 여자, ‘변동림(김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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