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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r6YmQADRg8

 

  한국문학의 돌연변이, 한국 문학사의 이단아, 근대문학의 마침표이자 현대문학의 시작점, 한국 시사 최고의 아방가르드 시인, 한국 최고의 모더니스트, 한국의 보들레르. ‘이상’을 수식하는 말들을 살펴보면 ‘이상’이 정말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입니다. 친구였던 시인 ‘김기림’은 그의 죽음이 한국문학을 50년 후퇴시켰다고까지 이야기했는데요,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얼마나 천재였는지 말이에요. 그의 작품들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너무 앞서갔던 것일까요? 서양 철학자 ‘니체’도 자신이 너무 일찍 왔다며, 자신의 책이 당대에 읽히지 않는 것을 보며 한탄했었는데 ‘이상’도 그랬을까요? 저는 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친절하게 독자를 배려하는 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런 글이 잘 읽히고 좋은 글이라고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어떤 글쓰기 강의에서든 독자를 고려해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글도 있습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불친절한 글, 독자에게 “너 날 이해할 수 있겠어?” 하며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하는 글이 있습니다. 많은 글들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과는 다르게 이런 글들은 오만하게도 독자를 자기가 선택합니다. 오직 간택 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 ‘이상’은 그런 글을 쓰는 작가였습니다. 그러니 우리처럼 선택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것이죠. 아무튼 이상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오늘 이상의 두 번째 사랑, ‘권순옥’과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쪼금이라도 이상을 이해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처럼 똑똑한 척, 잘난 척하는 지식인 남자들이 가장 매력 없어 하는 여자는 바로 자기와 닮은꼴일 겁니다. ‘이상’은 그런 신여성들을 ‘눈 가리고 아웅의 천재’, ‘석녀’, ‘한개 요물’이라며 가혹하리만큼 공개적으로 매도했는데요, 흥미롭게도 신여성이었던 ‘권순옥’에 대해서만큼은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그녀는 고리키 전집을 모두 독파할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언변에도 막힘이 없어 당시 내로라하는 작가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습니다. ‘이상’이 ‘권순옥’을 처음 만났던 것은 다방 ‘제비’문을 닫고 인사동에 ‘쓰루’라는 다방을 개업했을 때였습니다. ‘이상’은 ‘금홍’을 대신해 다방을 운영해줄 여급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엔젤’이라는 다방에서 자신과 말이 잘 통해 눈여겨봤던 여성을 스카우트했는데, 그녀가 바로 ‘권순옥’이었습니다. ‘이상’은 ‘권순옥’이 ‘금홍’에게 부족한 지적인 면을 채워주고, 어쩌면 자신의 ‘날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권순옥’은 이상에게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삶의 태도와 천재적인 면모가 비슷해 ‘D.H 로렌스의 모조품’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는데, ‘이상’은 진심으로 감격해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권순옥’의 교양을 칭찬하며 추켜세웠는데요, 나중엔 너무 칭찬을 해서 친구 ‘정인택’에게 빼앗기게 생겼다며 후회할 정도로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권순옥’도 비범한 ‘이상’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금홍’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실망하게 됩니다. ‘이상’은 ‘순옥’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금홍’을 더욱 격렬하게 끌어안게 되었다고 고백하는데, 바깥에서 바람피우고 집에 들어오면 배우자에게 더 잘하게 된다는데 그런 심리였을까요? 어쨌든 ‘이상’은 ‘순옥’을 마음에 품고 동경하면서도 아편 같은 ‘금홍’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핵 환자가 섹스에 집착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라고 하는데 ‘이상’은 자신의 생명을 그렇게 갉아먹으면서도 ‘금홍’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상’의 걱정대로 친구였던 소설가 ‘정인택’은 친구의 애인이었던 ‘순옥’을 좋아하게 됩니다. 새침하면서도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나눈다 한들 말이 잘 통했기 때문에 그런 지적인 면에 많은 문인들이 사랑에 빠졌는데요, 후에는 소설가 ‘박태원’까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정인택’은 신문사에서 퇴근하기 바쁘게 ‘쓰루’로 와서 번 돈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하숙비까지 밀려가며 애정 공세를 펼치자 ‘순옥’도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데요, 이때 ‘이상’과 ‘순옥’의 관계가 애매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금홍이’ 때문에 공개적으로 ‘순옥’을 자신의 애인이라고 밝힐 수도 없었던 ‘이상’은 ‘정인택’의 적극적인 구애 행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 스스로도 ‘금홍이’ 때문에 새 사랑을 시작하기 부담스러웠기에 ‘순옥’에게 적극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인택’이 괴로운 심경에 자살 기도를 합니다. 목숨이 경각에 붙어있는 걸 ‘이상’이 발견해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가까스로 살려내는데요, 이를 계기로 ‘순옥’은 ‘정인택’에게 마음이 기울게 됩니다. ‘금홍’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보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건 사내를 선택한 것이죠. ‘이상’은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주고 심지어 사회까지 봐줬지만,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인택’이 사경을 헤맬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놈이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술주정을 했다는 걸 보면요. 그렇게 ‘순옥’도 ‘금홍’도 떠나가자 ‘이상’은 또 골방에서 몇 날 며칠을 술 마시고 잠만 잤습니다. 그러다가 또 ‘쓰루’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었는데요, 이어서 명동에 ‘69’라는 다방을 개업했지만, 상호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하루 만에 허가가 취소됩니다. 당시 청소부로 일하던 동생의 봉급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살다가 친구 구본웅의 소개로 ‘변동림’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세 번째 사랑이 시작되는데요, 이것은 다음 영상에서 다루겠습니다. 추가로 ‘이상’이 죽은 뒤 ‘권순옥’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6.25전쟁 직후 남편 ‘정인택’과 함께 두 딸을 데리고 월북했는데요, 안타깝게도 얼마 후 ‘정인택’이 병으로 죽게 됩니다. 북에서 홀로 두 딸을 키우다가 극적으로 ‘박태원’을 만나는데요, 객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가웠던 것인지, 동병상련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박태원’과 재혼하게 됩니다. ‘박태원’은 ‘이상’이 동경으로 떠나기 전날 밤 술을 함께 마실 정도로 친한 친구였는데요, 그럼 ‘권순옥’은 ‘이상’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정인택’, ‘박태원’ 둘 모두와 결혼한 셈이 되겠네요. 아무튼 ‘권순옥’은 ‘박태원’이 말년에 뇌출혈로 전신 마비가 오고 백내장으로 실명해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그를 대신해 원고를 작성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계명 산천은 밝아오느냐’, ‘갑오농민전쟁’입니다. 여기까지가 비록 문인은 아니었지만 1930년대 모더니즘의 주역이었던 세 남자, ‘이상’, ‘정인택’, ‘박태원’과 아주 묘한 인연으로 얽혀 기꺼이 그들의 뮤즈가 되어준 여인. ‘권순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문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어찌 보면 사치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많은 이들이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시기이니까요. 그렇지만 1930년대 경성은 황홀하고 멋진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자본주의로 인해 지금과 같이 무분별한 소비와 향락적인 유흥문화가 만연했으니까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은 그런 경성의 이중성을 목격했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적응해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목숨을 걸 만큼 대단한 용기를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죠. ‘이상’을 비롯해 1930년대 모더니즘 작가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시대와 민족의 아픔을 외면한 채, 새롭고 화려한 것들, 즉 모던한 것들만 추구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당시의 삶을 왜곡하고, 그들을 매도하는 것입니다. 어둡고 우울한 시기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은 일상적 삶을 영위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시대적 상황에 과몰입해 평범했던 그들의 삶을 ‘시대’와 ‘민족’이라는 잣대로 거칠게 재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마치 200년 뒤 통일이 된 다음, 후손들이 지금 우리 시대를 분단의 아픔으로 얼룩진 우울한 시대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요.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의 영상은 ‘홍지화’의 ‘한국 문단의 스캔들’을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내일의 국어 이야기는 이상의 마지막 사랑, ‘변동림’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어쨌든 국어'입니다.

'국어가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는 없을까?'

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 목차

1. ‘이상’을 수식하는 말들

2. 두 가지 종류의 글

3. ‘권순옥’과의 첫 만남

4. ‘금홍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5. 친구 ‘정인택’의 자살 기도

6. ‘정인택’과 ‘권순옥’의 결혼

7. ‘정인택’의 죽음과 ‘박태원’과의 재혼

8. 1930년대 경성의 이중성

9. 일제 강점기 당시 문인들에 대한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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