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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kUpCKQUBRw

 

  ‘만해’는 세계 일주를 꿈꾸던 청년 학승이었습니다. 1906년, 그는 백담사에서 마냥 경전만 읽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겠다고 작심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합니다. 러시아를 거쳐 유럽, 미국을 향하는 세계 일주를 떠난 것이죠.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일진회’ 무리가 나타나 갖은 행패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일진회’는 을사늑약을 지지하면서 일본에 빌붙어 매국 행위를 일삼던 친일파였는데요, 그래서 그곳의 한인들은 외지인이 오면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어느 날 여행 도중 갑자기 청년 다섯 명이 나타나 ‘만해’를 결박하여 바다에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만해’를 일진회 회원으로 오인한 것이죠. 담력과 기개가 강했던 ‘만해’였지만 다섯 명을 당해내진 못했습니다. 끌려가면서 ‘만해’는 “죽더라도 뼈만은 조선 땅에 묻어 달라.”고 요구했는데요, 다행히 그 지역 경찰의 개입으로 겨우 살아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만해’는 세계 일주를 중단하였고, 같은 동포끼리 서로 오해하고 죽이는 우리 민족의 불쌍한 신세를 땅을 치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1911년 ‘만해’는 독립군 부대를 방문하기 위해 만주로 떠납니다.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해 여러 독립군 훈련장을 찾아가 애국 청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죠. 여러 지역을 돌아보던 중 어느 날 ‘만해’는 머리에 총을 맞습니다. 독립군 부대를 염탐하는 일본의 첩자로 오인 받은 것이었습니다. 총탄은 두개골 후부를 명중했고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만해는 기절했습니다. 그때 ‘만해’의 눈앞에 하얀 옷을 입고 꽃을 든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어서 일어나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만해’는 겨우 정신을 차린 후 묵었던 마을의 동포 집을 찾아가 수술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만해’는 두 번 죽을 수는 없다며 마취를 거부하는데요, ‘빠각 빠각’ 생뼈를 깎아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고통을 참아냅니다. 수술을 했던 의사는 ‘만해’를 사람이 아니라 활불(活佛)이라며 수술비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수술의 후유증으로 ‘만해’는 체머리를 슬슬 흔드는 불편을 숨질 때까지 겪게 됩니다. ‘김구’도 중국 망명 시절 동포가 쏜 총탄을 가슴에 맞고 일생 동안 손을 떨었다고 하는데 너무나 비슷하네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최린’은 천도교의 대표로서 ‘만해’와 3.1운동을 함께 기획하고 준비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둘은 동지로서 각별한 사이였죠. 그런데 ‘최린’은 다들 아시다시피 일제 말기에 변절하게 됩니다. 창씨개명을 하고, 중추원 참의를 거쳐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사장을 역임하죠. 어느 날 ‘최린’이 ‘만해’를 찾아왔는데, ‘만해’는 꼬락서니조차 보기 싫다며, ‘집에 없다’고 전하라고 합니다. ‘최린’은 돌아서며 가려다 마침 딸 ‘한영숙’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백 원짜리 지폐를 쥐여줍니다. 용돈 하라고 준거죠. 당시 백 원은 쌀 열다섯 가마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만해’는 부인과 딸에게 마구 화를 내고서는 그 돈을 가지고 명륜동에 있는 ‘최린’의 집으로 갑니다. ‘만해’는 대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돈 백 원을 던지며 ‘더러운 돈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조선의 3대 천재이자, 민족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육당 ‘최남선’이 변절했다는 소식을 들은 ‘만해’는 어느 음식점에 지인들을 불러내 ‘최남선’의 장례식을 치러 버립니다. “이제부터 왜인에게 종노릇을 자청해서 조선의 의기로부터 떠나서 죽은 고 최남선의 장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그날 ‘만해’는 비분강개하며 무진장 술을 퍼마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육당’이 길을 가다가 ‘만해’를 만나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만해 선생, 오래간만입니다.”, “당신, 누구시오?”, “나, 육당 아닙니까?”, “육당이 누구요?”, “육당 최남선입니다. 잊으셨습니까?” 그러자 ‘만해’는 이렇게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고 합니다. “내가 아는 최남선은 이미 죽어서 장사까지 치렀소.”

 

  조선의 또 하나의 천재였던 춘원 ‘이광수’는 불교 소설을 쓰면서 불교의 교리나 사상에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자주 ‘만해’를 찾아와 묻곤 했었습니다. 문학적으로도 통하는 것이 많아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춘원’도 ‘육당’과 마찬가지로 변절하게 됩니다. 각별했던 사이였기에 ‘만해’는 ‘춘원’의 변절을 매우 침통하게 생각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춘원’은 또 ‘만해’를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창씨개명을 한 후였죠. ‘만해’는 그것을 알고 ‘춘원’의 인사도 받기 전에 호통을 치며 내쫓았습니다. “네 이놈! 보기 싫다.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춘원’은 청천벽력 같은 그의 말에 놀라 어찌할 줄을 몰라 하다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만해’는 웅변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습니다. 논리가 정연하고 말이 유창했으며 목소리 또한 맑고 힘찼다고 합니다. ‘만해’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참 많이 했는데요, 요시찰 인물이었기 때문에 항상 형사들이 따라다녔습니다. ‘만해’는 형사들이 듣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워낙 그 솜씨가 능수능란하여 형사들을 들었다 놨다 했는데요, 한 번 보시죠.

 

우리들의 가장 큰 원수가 누굽니까? 소련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굽니까? 미국입니까? 그것도 아니에요. 사람들은 그럽니다. 모두들 그래요. 바로 일본이 우리들의 가장 큰 철천지원수라고 말입니다. 
(박수, 순사들의 중지 명령)
조용히들 하시오. 조용! 여러분 일본이 우리의 원수라고 그랬지요. 그렇지 않아요. 일본이 왜 우리의 원숩니까? 절대 아니지요.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원수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게으름입니다. 우리가 게으르다는 이 사실이, 우리가 무지하다는 이 사실이 바로 우리의 적인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원수라고 하니 형사들도 이를 제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멍청한 형사들만 제외하고 이 강연을 듣는 모든 사람들은 ‘만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알아들었습니다. 이처럼 ‘만해’는 일제 경찰들을 농락하면서 대중들을 울리고 웃기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대단하죠? 

 

  ‘만해’는 55세 때 간호사 ‘유원숙’과 결혼하고 성북동의 ‘심우장’에 살림을 차립니다. ‘심우장’은 백양사 승려 ‘김벽산’이 선물로 해준 집인데요, ‘소를 찾는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소’는 불교에서 ‘마음’을 가리키므로, ‘심우장’은 ‘자신의 마음자리를 바로 찾아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곳은 특이하게 남향이 아닌 북향으로 지어졌는데요, 남쪽으로 총독부 건물이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만해’는 한겨울에도 불을 때지 않고 차디찬 냉방에서 살았는데요, 왜냐는 질문에 “조선 땅덩이가 하나의 감옥인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히 산단 말이냐?”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만해’는 호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일본이 오늘날 호적법의 효시인 민적법을 실시했으나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죠.‘만해’는 자신은 그래도 상관없었지만, 외동딸인 ‘한영숙’이 걱정됐습니다. 학교를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고민 끝에 결국 ‘만해’는 딸을 직접 가르치기로 합니다.

 

  ‘만해’는 1944년 6월 29일,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사인은 여러 가지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궁핍으로 인한 신경통, 각기증, 영양실조 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인보, 여운형, 조지훈 등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왔고, 불교의 관행대로 화장을 했습니다. 홍제동 화장터가 유명했지만, 일본인이 경영하고 있었기에 미아리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에서 화장을 했습니다. 이때 은색 치아 하나가 타지 않고 남았는데요, 사람들은 이를 보고 ‘만해’의 깊은 법력의 산물이라며, 민족에 길조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정말 그랬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 후 조선은 해방을 맞게 됩니다. 이 치아는 항아리에 담겨 유골과 함께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만해’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한용운’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들이었습니다. 오늘의 영상은 김광식의 <우리가 만난 한용운>을 참고해 만들었습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어쨌든 국어'입니다.

'국어가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는 없을까?'

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 목차

1. 세계일주

2. 총상

3. 최린

4. 육당 최남선

5. 춘원 이광수

6. 우리의 원수는(강연)

7. 심우장

8. 호적

9. 은색 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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