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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게 무슨 색이죠?(얼티밋 그레이). 회색이요? 그럼 이 색은요?(일루미네이팅) 네, 노랑 맞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냐구요? 그럼 다음 질문 갑니다. 이 색은 무슨 색인가요? 또 노랑이요? 그럼 이 색은요? 그럼 이건요? 그럼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이건?(쭉 노랑계열의 색 나열) 우리가 흔히 하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는 ‘언어’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금 봤듯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언어가 갖는 태생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언어는 이 세계를 담기에 항상 부족합니다. (‘샛노랑과 샛빨강 사이’ 노래)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 있는데 그걸 부르는 이름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대충 ‘주황색’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쉽습니다. 머릿속에는 생생하게 들어있는데 이를 친구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네요. 책 한 권을 써서 설명한들 친구가 그 색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을까요? 비슷하게는 떠올리겠지만 완벽하게 일치하는 색을 떠올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언어의 한계인 거죠. 오늘은 이러한 ‘언어의 한계’와 더불어 ‘대화’와 ‘소통’이 근본적으로 왜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지, 이것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시험 전날 라이벌인 친구에게 전화가 옵니다. “뭐해?”(진수), “잤어.”(영호) 이 짧은 대화를 가지고 한 번 분석해보죠. 우리가 하는 말은 이 네 가지 흐름에 따라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칠판) 먼저 내가 말하려는 내용이 있겠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한 내용이 있을 겁니다. 즉 ‘언어’, ‘말’이겠죠. 그리고 상대방이 그걸 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상대방은 그것의 의미를 해석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잤어’라는 말이 전달되는 것인데요. 그런데 이 3가지 연결고리가 자꾸 삐거덕거리면서 우리의 소통을 힘들게 합니다.
1번 연결고리는 앞에서 봤듯이 언어 자체가 갖는 한계와 관련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자크 라깡’은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라고 했는데요. ‘기표’와 ‘기의’는 앞선 영상에서 설명했으니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언어는 세계를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자꾸 미끄러진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극단적으로 비슷한 색깔들을 예로 들었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에서도 이러한 불일치는 항상 일어납니다. 지영이에게 ‘장미’라는 단어와 민호에게 ‘장미’라는 단어의 의미는 과연 같을까요? ‘장미’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지영이는 빨간 장미를 떠올리고 민호는 노란 장미를 떠올렸다면요? 우연히 두 사람 모두 빨간 장미를 떠올렸다고 해도 두 사람이 떠올린 장미가 같은 모양은 아닐 겁니다. 지영이가 좋아하는 장미는 한 송이씩 피고 잎이 큰 ‘하이브리드 티’이고 민호는 한 줄기에 여러 송이가 뭉쳐서 피는 작고 아담한 ‘플로리분다’라면요? 많이 양보해서 만일 이것까지 똑같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에게 ‘장미’가 갖는 의미는 분명 다를 겁니다. 지영이에게 장미는 ‘정열적인 사랑’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 사랑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어서 지영이는 장미를 좋아하는 겁니다. 민호에게 장미는 삶의 희망입니다. 돌이켜보면 가시처럼 상처뿐인 삶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예쁘게 꽃피운 장미를 보면서 희망을 품는 것이죠. 둘 다 ‘장미를 좋아해’라고 똑같이 말은 하고 있지만 사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데도 둘은 서로 너무 잘 통한다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잘 통하는 거 맞나요? 또 1번은 우리 표현력의 문제와도 관련됩니다. 영호는 실제로는 깜빡 존 것인데, ‘잤다’라고 표현해버렸습니다. ‘졸았다’와 ‘잤다’는 꽤나 큰 의미 차이를 갖지만 대충 표현하는 습관 때문에 혹은 불충분한 표현력 때문에 또 괴리가 생긴 것입니다.
2번 연결고리의 상황도 심각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내가 말한 그대로를 들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종종 잘못 듣기도 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듣기도 하기 때문이죠. (오빠만세) ‘오빠 만세’로 들리는 이 노랫말은 ‘all by my self’입니다. 이처럼 어떤 발음이 자신에게 익숙한 발음으로 들리는 것을 ‘몬데그린효과’라고 하는데요, 재밌으니 하나만 더 해보죠.(who let the dogs out) 이것도 ‘우울할 때 똥 싸’로 들리시죠? 원래 가사는 ‘who let the dogs out’입니다. 재밌죠? 이처럼 우리는 들리는 대로 듣지 않고 우리에게 더 익숙한 대로 듣습니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인데요. 이건 많이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영상에서 ‘내려 오시라구요’라는 안정환의 말을 본인이 듣고 싶은 대로 ‘쉬라’는 말로 듣는 것처럼 우린 들리는 그대로 듣지 않고,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난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특정 상황, 특정 상태에서는 종종 그렇게 잘못 들리기도 합니다. 다들 경험해 보셨죠?
1,2번도 심각하지만 3번 연결고리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먼저 2번 연결고리에서 진수는 영호의 ‘잤어’라는 말을 잘 못 들어 ‘잘래’라고 들었습니다. 자신도 졸려 죽겠어서 자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들은 거겠죠? 그리고 그 말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뭐 잔다고?, 벌써 공부 다했다는 뜻이군.’ 그러곤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하고 또다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이 친구처럼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듣습니다. 그리고 이 해석에는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이 투영되기 마련입니다. 영호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견제하는 친구이기에 ‘잘래’라는 말을 위험과 경고의 신호로 읽는 것이죠. ‘확증편향’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3번 고리를 삐그덕 거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신념에 맞는,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듣고 싶은 대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죠. 1979년 로드(Charles Lord), 로스(Lee Ross), 래퍼(Mark Lepper) 세 심리학자는 이를 실험해 보았는데요. 사형제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똑같이 보여주고 사람들이 갖고 있던 기존 신념이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했습니다. 보여준 자료는 사형제도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균등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실험 결과, 기존 입장이 변한 참가자는 하나도 없었고 모두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욱 공고히 했다고 합니다. 보여준 자료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던 것이죠. 일상 대화에서도 우리들은 이러한 확증편향을 갖고 상대방의 말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그러니 상대방의 말의 의미가 왜곡되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말을 하는 나 자체도 통일되어있지 않고 분열되어있다는 것이 또 문제입니다. 메라비언의 법칙 기억나시죠? 앞에서 말한 것들은 겨우 7%의 영향력을 갖는 언어 차원의 것들인데 이것마저도 삐거덕거리고 있는 것인데요. ‘언어’는 의식 차원, ‘준 언어’는 감정 차원, ‘비언어’는 무의식 차원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다행히 이것들이 일치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세 요소가 서로 다른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나 자체가 의식 차원, 감정 차원, 무의식 차원에서 분열되어 있는 것이죠. 말로는 ‘맛있다’고 하지만 그 목소리에 머뭇거림이 느껴진다면, 그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오물거리며 휴지를 찾고 있다면. 우리는 여기서 ‘맛없다’라는 의미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사실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상대방이 내 무의식적 차원의 진실을 읽어냈으니까요. 하지만 무의식은 말 그대로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이며 이것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즉 내가 의식 차원에서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무의식 차원의 욕망을 지금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도 나 스스로는 물론이고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것이 진짜 메시지의 의미, 즉 진실에 가까운데도 말입니다.
세 연결고리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대화하는 두 사람 자체의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페르소나라고 하죠. 즉 특정 상황에서 특정 역할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보면 부모님 앞에서는 과묵한 아들이 되어 그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지만, 친구들과는 호탕하게 욕하면서 놉니다. 또 직장 동료들에게는 아주 예민하고 이기적인 사람처럼 굴지만, 사랑하는 애인 앞에서는 또 보살이 됩니다. 이 많은 페르소나 중에 어느 하나만이 진짜고 나머지는 다 가짜일까요? 다 가짜라고 하기엔 부분부분 내 진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담겨있어 쉽게 그렇게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페르소나를 쓴 채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합니다. 그럼 지금 말하고 있는 나와 상대방은 진짜 만나고 있는 게 맞을까요? 그리고 우린 정말 소통하고 있는 걸까요? 점점 심각해지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진짜에 가까운 모습으로 서로 대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여기’의 ‘나와 너’는 어제의 ‘나와 너’와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하루 사이에 어떤 사건을 경험하고 신념과 가치 체계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커다란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정 상태는 그날그날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어제의 기억을 가지고 ‘어제의 상대방’을 상정해 놓고 말을 건넵니다. ‘지금-여기’의 상대방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도 말이죠. 이 경우 과연 대화와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너무 집요하게 끌고 온 것 같기도 한데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대화’와 ‘소통’이라는 것이 당연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어의 한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우리의 대화와 소통을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대화’라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니 우린 모두 침묵해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대화와 소통을 가로막는 요인들을 알고 그 불일치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즉, 내가 이 정도 말했으니 당연히 상대방은 내 말을 이해했겠지라고 낙관하지 말고,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는 것이죠. 또 상대방의 말을 너무 쉽게 자기식대로 해석해버리지 말고 정말 상대방이 말하려는 진실이 무엇일지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의 대화는 끊임없이 서로 미끄러질 것이고 마주하고 있어도 만나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국어 이야기
어쨌든 국어 이야기
이것도 국어 이야기
'국어가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는 없을까?'
안녕하세요. '어쨌든 국어'입니다.
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 목차
1. 언어의 한계(색깔)
2. 말하려는 내용-표현한 내용 간 괴리(언어의 한계, 표현력 문제)
3. 표현한 내용-들은 내용 간 괴리(몬데그린 효과, 듣고 싶은 대로 듣기)
4. 들은 내용-해석한 내용 간 괴리(감정과 생각 투영, 확증편향)
5. 나 자체의 '분열' 문제(의식, 감정, 무의식)
6. '페르소나'의 문제
7. '지금-여기'의 문제
8. '대화'와 '소통'을 위한 노력
#라깡 #언어의한계 #대화 #소통 #몬데그린효과 #확증편향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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