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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SLgdzaPGGE

  3년 전 역사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사건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라는 책으로 세종을 논란의 중심에 세운 이영훈은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한문을 공부하면서 한국 경제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식민지근대화론을 내세우며 경제적 관점에서 우리의 식민지 근현대사를 재평가하고자 했습니다. 2006년에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을 주도하며 큰 논란을 일으켰던 이영훈은 지금은 이승만 학당의 교장으로 있으면서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지금의 역사학자들이 지나친 민족주의로 인해 조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일본이 그냥 싫으니까 일본이 망하게 한 조선은 훌륭한 나라여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조선을 연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조선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히려 환상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죠. 그는 책에서 크게 노비제, 기생제, 사대주의를 가지고 세종이 과연 성군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그는 세종이 양인과 노비의 결혼을 방관하고 종모위천법을 시행해 노비가 대량으로 양산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전 세계에 유례 없는 기생 세습제도를 통해 기생 또한 양산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황제만 할 수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태조 때부터 해오던 천제(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폐지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누구보다 세종이 명에 지극정성으로 사대했다고 주장합니다. 훈민정음 역시 당시 중국의 한자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 보고, 결국 명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즉 외교와 사대의 차원에서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여러 주장 가운데 훈민정음과 관련된 주장과 그 근거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훈민정음과 관련하여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영훈이 처음은 아닙니다. 고려대 강만길 명예교수는 일찍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세종의 동기라는 글에서 훈민정음 창제에는 숨은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훈민정음이 결코 애민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백성들에게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겁니다.  용비어천가를 통해 조선 건국 과정에서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이 벌였던 결코 정당화되기 어려운 일들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강만길 교수와 달리 이영훈은 훈민정음을 중국 한자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정확하게는 그의 주장은 아닙니다. 고려대 정광 명예교수의 책을 읽고 자신의 입장에 부합하는 부분을 정리하여 책으로 낸 것입니다. 정광과 이영훈은 훈민정음은 결코 백성들에게 새로운 문자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 중국어와 너무나 달랐던 조선의 한자음을 표준화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 한자를 읽기 위한 발음기호 정도로 쓰려고 만들었다는 것이죠. 물론 그 작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변음 토착의 과정을 거쳐 표음문자로 정착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문자로 쓰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정광과 이영훈의 근거를 살펴보기 전에 당시의 상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중국의 한자 발음은 우리나라의 한자 발음과 많이 달랐습니다. ‘을 우리는 []으로 발음하지만, 중국은 [tiān]으로 발음합니다. ‘圖書館’[도서관] [túshūguǎn], ‘大蝦’[대하] [dàxiā], ‘明洞’[명동] [míngdòng], ‘歷史’[역사] [lì shĭ]라고 발음합니다. 물론 觀光’[guānguāng]과 같이 얼추 비슷한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단어들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상당히 달랐습니다. 더 큰 문제는 조선 내에서도 지역마다 발음이 달랐다는 것인데요. 한자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하늘 천부터도 발음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중부지방에서는 []으로 발음했지만, 위쪽 지방은 [], []으로 발음했고, 아래 지방은 [], []으로 발음했습니다. 외국어가 들어올 때 우리는 들리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의 언어체계에 끼워 맞추는 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영어가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father’[ˈːðə(r)]라는 단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의 음운체계에 따라 우리식으로 받아들입니다. ‘f’ 발음과 ‘th’ 발음을 우리는 영어를 배워서 듣고 인식할 수 있지만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고 해봅시다. 분명  으로 인식할 것입니다. 우리말에는 f발음과 th발음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파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father’[ˈːðə(r)] [파더]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그렇게 들리니 그렇게 쓰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실제 영어 발음과 큰 차이가 생기게 되는데요. 그래서 외국인들이 콩글리쉬를 듣고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겁니다. 또 우리나라 안에서도 사람에 따라 혹은 지역에 따라 같은 소리도 다르게 인식합니다. 누구는 ‘computer’ 콤퓨타로 듣는가 하면, 누구는 컴퓨터로 듣습니다.  ‘cleaning’을 어디서는 크리닝으로 또 다른 곳에서는 클리닝으로 듣기도 합니다. 아무튼 세종 당시도 이처럼 중국의 한자음과 조선의 한자음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그리고 세종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훈민정음 창제 후 신숙주, 박팽년 등을 시켜 동국정운이라는 운서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동국정운은 쉽게 말해 한자의 표준 발음을 정한 후 이를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한자 발음 사전입니다. 학계에서도 초성 17자와 전탁자 6자를 합치면 동국정운의 한자음 자모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 고유어에 거의 쓰이지 않았던 전탁자, 여린 히읗을 만들어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에 사용했다는 점, 실제 조선 사람들이 사용했던 발음인 순경음 이 기본 초성 17자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순경음 , , 은 실제 국어 표기에는 사용되지 않고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에만 사용되었다는 점,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초성의 발음을 한자로 예를 들어 설명했다는 점을 들어 한글 창제의 목적 중 하나로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광과 이영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이것이 훈민정음 창제의 주된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이 제시한 근거들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훈민정음해례본 어제서문의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부분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라고 번역되는데 여기서 國之語音 우리나라의 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음으로 번역해 자신들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의 한자 발음이 중국말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어린 백성은 중국과 다른 한자음을 사용하는 어리석은 양반 사대부들이 되고 훈민정음 양반 사대부들에게 올바른 한자음을 가르치는 글자가 됩니다. 이영훈은 이를 토대로 세종은 기껏해야 양반들의 성군이지 만백성의 성군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근거는 세종이 한글을 만들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이 고금운회’, ‘홍무정운 등의 중국의 운서를 번역하게 한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동국정운을 편찬하도록 명했다는 것입니다. ‘고금운회 홍무정운은 중국에서 만든 한자 발음 사전이고, ‘동국정운은 조선식 한자 발음 사전입니다. 즉 훈민정음 창제의 주된 목적이 한자음의 표준화와 정확한 표기였기 때문에 이러한 운서 편찬을 가장 먼저 명했다는 겁니다. 대개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기 마련이니까요. 이 두 가지가 이영훈이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라는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근거들입니다. 제가 임의로 삭제하거나 뺀 것이 아니구요. 이 책의 훈민정음 관련된 부분이 대부분 정광 교수의 책에 의존해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여 정리하고 있어 실제로 굉장히 분량이 짧아서 그렇습니다. 정리하면 훈민정음은 백성이 아닌 양반들을 위해 만든 것이었고, 문자가 아니라 중국식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훈민정음의 해례본의 國之語音이라는 구절과 운서 편찬을 먼저 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일의 국어 이야기는 이러한 근거들이 정말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되겠습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국어 이야기

어쨌든 국어 이야기

이것도 국어 이야기

 

안녕하세요. '어쨌든 국어'입니다.

'국어가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는 없을까?'

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1.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책의 주요 내용

2. 훈민정음 문제 제기 - 강만길 교수의 주장, 이영훈, 정광 교수의 주장

3. 세종 당시의 상황 - 중국식 한자음과 상당히 달랐던 조선의 한자음

4. 외국어를 받아들일 때 달라지는 발음

5.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내용 -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

6. 정광, 이영훈의 근거 - '國之語音(국지어음)' - 운서 편찬 사업을 가장 먼저 함

7. 내일의 국어 이야기 - 근거의 타당성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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