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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2n2-go_EOM

  여러분 시중의 문법책들은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쓴 것일까요? 서점에서 국어 문법책을 누가 집는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질문인데요, 그렇죠. 바로 외국인들이죠. 그렇다면 영어 문법책은요? ‘영어 입장에서 외국인인 한국인들을 위한 것이겠죠? 그렇습니다. 모든 문법책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쓰여집니다. 물론 저 같은 국어 전공자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런데 왜 한국인을 위한 국어 문법책은 없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문법책을 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우리말을 문법적으로,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언어학자 소쉬르를 통해 왜 문법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문법을 왜 가르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조주의의 원류’,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합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제외하면 단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고, 심지어 강의 노트마저도 끝나면 잘게 찢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후에 제자들의 노트를 바탕으로 출판한 일반언어학 강의(1916)’가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인데요, 물론 제자인 앙투안 메이예는 선생님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출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이 책이 그의 사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말입니다.

 

  소쉬르의 언어혁명은 기호 기표(시니피앙)’ 기의(시니피에)’의 결합체로 정의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과거 사람들은 기호 ’,  음성과 동일한 것으로 보았고 이것이 특정 사물을 지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은 이미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지시하는 이름이고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소쉬르는 이러한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재배치합니다. ‘기호에서 실재하는 사물을 배제하고 청각영상 즉 소리(음성)를 의미하는 기표와 거기에 내재된 의미를 뜻하는 기의를 가지고 이 둘의 결합체를 기호라고 재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가 필연적이 아닌 자의적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이것(나비)’을 우리나라에선 나비라고 하지만, 프랑스에선 파피용이라고 하는 것처럼 굳이 이것(나비)’을 어떤 특정한 말로 불러야 한다는 그런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이것(나비)’ 나비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냥 자의적으로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배우는 언어의 본질 기억나시죠? 그리고 언어는 내용 형식의 결합이라고 배우셨을 겁니다. 여기서 내용 기의이고 형식이 기표입니다. 그리고 이때 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자의적이다라고 하면서 언어의 자의성도 배우셨을 텐데요, 이 모든 것이 소쉬르에게서 나온 것들입니다.

 

  여기까지는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라고 반문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언어체계에 대한 소쉬르의 생각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180도 바꿔버렸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쉬르 이전에 사람들은 세계가 먼저 있고 그것에 대응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 언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쉬르는 오히려 자의적으로 짜여진 기표 기의로 구성된 언어체계(소쉬르는 이를 구조라고 표현)가 먼저 있고 그 언어체계에 따라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한다고 봤습니다. 즉 언어(구조)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세상을 구별하고 인식할 수 있으며, 세계는 미리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만 실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어렵죠? 프랑스에서는 이것(나비)과 이것(나방)은 모두 파피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방 나비라는 단어가 따로 있죠. 그래서 이 둘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인은 방에 이것들이 들어오면 파피용 2마리가 들어온 것으로 인식하고 파피용 2마리가 들어왔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나방과 나비 한 마리씩 들어온 것이죠. 동일한 세계, 현상을 경험하고도 이렇게 다르게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요? 서로 다른 언어체계, , ’구조 때문에요. 이제 왜 함박눈이 내릴 때, 에스키모인들이 봐봐 지금 서른가지의 눈이 내려라고 말하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소쉬르는 이러한 언어체계, , ‘구조’, 또는 랑그라고도 하는데요, 이것이 외부 세계와 무관하게 존재하며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우면서 이를 습득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한국어의 언어체계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로 문법책을 사서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외국인들에게는 아직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항상 좌절을 맛봤던 지점이 있죠. 문법책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문장을 만들었는데, “~ 말은 되는 거 같은데 우리는 그렇게 안 써.”라며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타일러 리얼 클래스 광고) 이것은 우리말식으로 즉 한국어 언어체계대로 문장을 짰기 때문에 나타나는 슬픈 현상입니다. 문법적으로 오류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말과 다른 영어의 구조와 맞지 않으니 외국인들이 듣기에 어색하고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영어를 가지고 예를 드니 좀 슬프네요. 그럼 국어로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말을 배우려는 외국인들 앞에서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우린 네이티브로서 한국어의 구조를 완벽하게 머릿속에 담고 있으니까요. 7살짜리 꼬마라도 책으로 20년 동안 배운 영국인보다 더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영국인이 물이 맑다에서 물이 [무리]로 연음되어 발음된다는 것을 배운 후에 해돋이 [해도디]로 발음하고 있을 때, 7살짜리 꼬마는 자신 있게 [해도지]라며 발음을 교정해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꼬마애가 , 이 형식형태소 나 반모음 와 만나면 , 으로 구개음화 되어 발음된다는 문법적 지식을 알고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발음해도 문법에 맞게 잘 발음하는 것이죠. 머릿속에 문법체계가 이미 들어있으니까요. 그렇게 발음을 교정해주니 이 영국인이 넌 죽도록 친절해라고 합니다. 아마 죽도록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배웠겠죠. ‘죽도록 사랑해라는 문장에서 죽도록에 밑줄 치고 , 이건 매우(very)‘와 같은 뜻이구나.”하면서요. 그렇게 죽도록 친절해라는 문장을 나름대로 기특해하며 만들어냈겠지만, 7살짜리 꼬마애는 이를 한 방에 날려버립니다. “, 우린 그렇게 안 써^^” 이게 바로 언어체계, 즉 소쉬르가 말한 구조의 힘입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왜 문법을 가르치는 것일까요? 소쉬르의 말대로 언어체계가 갖춰 져 있다면 우리는 문법을 배우지 않아도 문법적으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문법 교육의 바이블, ‘학교 문법과 문법 교육이라는 책에서는 한국어를 모국어라 하는 학생은 문법적 지식을 배우지 않아도 이미 굳이를 늘 [구지]로 발음한다. 따라서 학생들에게는  굳이 [구지]로 소리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도록 해야 한다. 곧 논리적인 추론 과정을 통해서, 왜 그런 소리가 나는지를 탐구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문법이 수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수학을 배우는 이유는 수학 공식이나 수학적 지식들을 쌓아두기 위해서가 아니죠. 놀랍도록 잘 짜여져 있는 수학의 체계를 하나하나 따라가 보면서 그리고 기본적인 공리들을 가지고 문제에 적용해 풀어 보면서 논리적 사고능력이 증진되기 때문에 우리는 수학을 배우고 가르칩니다. 즉 명징한 수학의 체계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곧 수학 공부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문법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법적 지식을 외우거나 규범에 따라 기계적으로 바른 언어생활을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문법적으로 맞게 잘 사용하고 있는 이 언어의 체계를 따라가 보면서 아 이렇게 설명이 되는구나를 느끼고, 놀라워하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리적 사고력이 증진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소름끼치도록 딱딱 들어맞는 구조의 힘 앞에서 경이감을 만끽하는 것 그것이 문법공부의 진정한 목적인 것입니다. 이제 소쉬르 핑계 대면서 문법 공부는 안 해도 된다고 말하는 친구들은 없겠죠?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영상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국어 이야기

어쨌든 국어 이야기

이것도 국어 이야기

 

안녕하세요. '어쨌든 국어'입니다.

'국어가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는 없을까?'

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 목차

1. 한국인을 위한 국어 문법책이 없는 이유

2. 소쉬르 소개

3. 소쉬르의 언어혁명1(기표, 기의, 자의성)

4. 소쉬르의 언어혁명2(언어체계를 통해 세계가 구성됨)

5. 언어체계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들 6. 학교에서 문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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