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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이 한자의 발음기호였다?(한자음 발음 기호설) 2부

영원한 현재 2021. 4. 26. 12:37

https://youtu.be/AXBZaLnoV4I

 지난 시간 우리는 이영훈의 책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 훈민정음과 관련된 부분의 주장과 근거들을 살펴봤습니다. 당시 이 책에서 정말 논란이 됐던 부분은 세종의 사대주의, 노비제, 기생제 부분이었습니다. 주체적이었고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했던 왕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어느 왕보다 지극정성으로 명에게 사대했고,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혹한 노비제와 기생제를 만들어 노비와 기생을 세습시키고 양산했다고 하니까요. 그 누구든 충격받지 않았겠어요? 아직도 세종대왕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뽑히는 이 대한민국에서 말이죠.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역사학자들이 논박하기도 했고, 저는 그럴 깜냥도 못 되기에 논란의 변두리에 있긴 하지만 중요성으로만 따지면 어쩌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는 훈민정음과 관련된 부분만 다루고자 합니다. 전편에서 이영훈의 주장과 핵심 근거들을 살펴봤고 오늘은 그 근거들의 타당성을 점검해보겠습니다. 전편을 보지 않으셨다면, 위에 카드를 눌러 전편을 먼저 보고 오시면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영훈은 세종이 당시 중국 음과 달랐던 조선의 한자음을 표준화하고 이를 정확히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써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 대해 두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해서 반론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반론은 국어학자 김슬옹 선생님의 훈민정음 한자음 발음기호 창제설에 대한 반론-이영훈(2018)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먼저 훈민정음은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인가?’라는 쟁점에서 이영훈은 양반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해례본 國之語音 부분을 우리나라의 말이 아닌, ‘우리나라의 발음으로 번역한 것을 들고 있습니다. 조선의 한자음과 중국의 한자음이 달라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이때의 백성은 당시 한자를 썼던 양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백성은 양반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라고 번역되는데, 이때 人人 모든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인정하면서 세종이 직접 써놓은 해례본 서문은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입장에 부합하는 내용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정인지 서문의 逐命詳加解釋 以喩諸人에서도 알 수 있듯이 諸人’,  모든 사람을 깨우치도록 명했다고 나옵니다. 이영훈 측 입장에서는 그렇다면 왜 백성들을 위한 책을 따로 또 만들지 않았느냐?’라는 재반론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정말로 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다면 백성들 용으로 쉽게 설명한 교재를 따로 또 만들었어야지 않냐는 거죠. 세종은 한글 창제 후 곧바로 하급 관리들을 대상으로 훈민정음을 가르치고 과거 시험에도 도입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직접적으로 백성들과 대면해 소통하는 하급 관리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훈민정음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죠. 서리들이야말로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백성들과 이야기하고 영향을 끼치는 존재였으니까요.

두 번째 쟁점은 훈민정음 창제의 주목적이 무엇인가?’입니다. 이영훈은 이에 대해 한자음을 표준화하고 이를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 쓰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근거로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운서 편찬이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례본 서문에 나랏ᄊᆞ미 中國듕귁달아 文字문ᄍᆞᆼ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라고 명시되어 있듯이 훈민정음은 말과 글의 불일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최만리가 올린 갑자상소문에 나와 있듯이 세종은 예전부터 백성들이 알아볼 수 있게 법 판결문을 이두로 쓰도록 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두는 잘 못 읽을 염려가 있어 한계가 명확했기에 더 쉬운 글자를 세종이 친히 만들었는데 그러한 내용이 상소문에 나옵니다. 이를 통해 세종이 한글을 한자음 표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새로운 문자를 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용자례에서 든 예시들이 모두 고유어라는 점을 근거로 들 수 있습니다. ‘용자례는 자음과 모음이 초성, 중성, 종성에서 실제 사용된 예시를 나열한 부분입니다. 만약 한자음 표기가 주목적이었다면, 한자를 가지고 예를 들었겠죠? 그런데 용자례에 나오는 123개의 낱말 모두 고유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숙주가 쓴 사성통고라는 책에서 훈민정음이 결코 한자음 표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훈민정음은 우리말 소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것이라, 만일에 한자음을 나타내는 데 쓰려면 반드시 변화시켜서 써야만 곧 제대로 쓰일 수 있다.’라는 부분을 보면 주목적이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한자음 표기가 주목적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영훈이 근거로 들고 있는 한글 창제 후 운서 편찬을 가장 먼저 했다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훈민정음 반포 후 훈민정음을 사용한 최초의 문서는 1445년에 지은 용비어천가입니다. ‘동국정운 1447년에 완성되죠. 그리고 <고금운회>, <홍무정운> 등 중국의 운서를 먼저 번역했다고 해서 반드시 한글 창제의 주목적이 한자음 표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통학용으로 자전거를 샀는데 그걸로 먼저 장을 보러 갔다고 해서 자전거를 산 주목적이 장보기가 될 수 없는 것처럼요.

 

  여기까지 이영훈의 주장과 근거들에 대한 반론을 모두 정리해보았습니다. 결론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세종은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발음기호로써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것이죠. 그 소리가 고유어든 한자음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마치기 전에 짧은 소견이지만 역사에 대한 생각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어쩌면 역사는 진실 거짓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보지 않는 이상 역사의 진실은 알 수 없는 게 아닐까요? 남아있는 기록들과 증언을 가지고 스토리를 짜는 것이죠. 수많은 역사의 공백들은 결국 우리가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팩트의 조각들은 주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인과관계를 짜느냐가 아닐까요. 어떤 사람이 옷 한 벌을 거지에게 주었다고 해봅시다. 이때 거지에게 옷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죠.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주었는지, 그 옷을 준 행위가 어떤 의미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정말 추워 보여서 선뜻 내어준 것인지, 아니면 집에 옷이 너무 많아 처치 곤란했었는데 마침 거지가 보여서 거지에게 버린 것인지, 그 맥락과 인과관계는 알 수 없습니다. 진실은 그 사람만이 알고 있겠죠. 제삼자인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가지고 추론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평소 그 사람이 다른 곳에도 많이 기부를 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면 자선의 행위로 볼 수 있겠죠. 그러나 평소 그가 쓰레기 처리 비용을 아까워했던 짠돌이였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 행위는 방기가 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근거들이 반드시 진실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죠. 평소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날따라 쓰레기 처리 비용이 아까워 마침 보이던 거지에게 버린 것일 수도 있고, 평소 짠돌이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했지만 이를 반성하고 선행을 베풀었을지도 모르죠. 이처럼 역사는 주어진 팩트를 가지고 정보의 공백들을 메우기 위해 이야기를 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것이 진실이냐 거짓이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이야기가 더 타당하고 정합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있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역사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이영훈의 주장과 근거도 사실 팩트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를 좀 다르게 짠 것일 뿐이죠. 문제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일 것이냐입니다. 니체라면 아마 네 삶을 고양시키고 자유를 증진시키는 그런 해석과 기억을 선택하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일본이 식민 지배를 했고, 철도를 깔아줬다는 두 가지 사실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일본이 조선의 경제발전, 근대화를 위해 철도를 깔아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수탈하기 위해 철도를 깔아 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독재를 했고 경제 개발을 했다는 두 가지 사실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독재를 했다고 스토리를 짜고, 어떤 사람은 독재를 정당화하고 장기집권의 명분을 얻기 위해 경제 개발을 했다고 스토리를 짭니다. 그리고 오늘 다룬 훈민정음도 어떤 사람은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한자음도 표기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오직 한자음 표기만을 위해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해석들, 기억들 가운데서 선택해야만 합니다.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기억을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줄 것인지 말입니다. 어느 닭장 주인이 한 기사에서 닭들에게 클래식을 틀어주고 좀 더 따뜻하게 해주면 닭들이 알을 더 많이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튼튼하고 따뜻하게 닭장을 근대화시켜줬습니다. 그리고선 닭들에게 다 너희를 위한 거야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닭이라면 그 말을 믿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우리들의 알을 더 신속하게 그리고 더 많이 뽑아내려는 술수니까 말이죠.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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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채널은 이런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목차

1.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의 주요 내용

2. 첫번째 쟁점, '훈민정음은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인가?'에 대한 반론

3. 두번째 쟁점, '훈민정음 창제의 주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론

4. 결론,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

5. 역사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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